제목 : 마음 씨앗 등록일 : 2009-11-01    조회: 761
작성자 : 김창수 첨부파일:


각인각색이란 말이 있다. 사람마다 제 각각의 모습만큼이나 상대방에 대한
마음 씀씀이도 각양각색이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연으로 시작해서 인연으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생존하는 동안
모래 속의 깨알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스치고 잊혀진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자기를 중심으로 한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지만
여하튼 인연이란 우연한 인연이든 필연적인 인연이든 어쩌면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세상의 인연은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혈연이나 동창, 직장동료 및 사회생활을 하면서 관계를 맺은 친한 지인처럼 
비교적 길고 오랜 세월동안 형성되는 인연도 있지만,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무수히 많다. 단지 옷깃만 스쳤을 뿐인데 내가 혹은 상대방이 
사무사(思無邪)의 마음으로 혹은 아낌없이 열린 마음으로 마음 씀씀이를 
푸는 경우만큼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마음 
씀씀이에는 금전적인 관계는 전혀 무관하고 오로지 마음 씀씀이 자체를 
푸른 바다처럼 너른 마음으로 열린 사람의 마음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초등학생이 하얀 도화지에 예쁜 그림을 그린 그린 것처럼  희고 순수하며
 곱다.

초면의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다가서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니할 수 없다. 혈연이나 직장 동료처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별 감동
없는 때로는 지겨울 정도로 일정한 틀과 공간 속에서 자주 만나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처럼  만나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고 인간적인 경우가 있다. 

또한, 그러한 조건없는 처음 대면은 이해관계도 없을 뿐 더러 상대방을
처음에는 자세히 알 수 없으니 남의 단점이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외양이나 말투 등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편안하게 해주어 무의식 
속에 엔도르핀이 샘솟는 것처럼 길고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다가
여러 사정으로 다른 지인처럼 싫어지기도 하고 혹은 우정이 더욱 깊어지
기도 하지만 구면이 되면 외부적인 모양과 모습 등은 오래가지 못하고
잠시 옷깃을 스친 인연으로 흐르는 강물에 무심한 흔적만 남긴 채 
흘러가 버린다.

지나가다가 옷깃을 스친 초면의 사람에게서 마음을 열고 서로 다가서는
상대방이 비록 시간이 흘러 세월의 더깨만큼이나 마음의 벽이 조금씩 
쌓여 다른 사람처럼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하여도 처음 만날 때의 무색
무취의 초발심으로 돌아가 인간의 선한 마음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굳이 맹자의 성선설을 들먹이자면 원래부터 악한 인간은 없다.
물론 수학 때 때묻은 도덕 교과서의 한 귀퉁이에 쓰였던 순자의 성악설
처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대립의 논지도 있다.

지그재그로 회오리 일듯 파도가 치는 바닷속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수면의 바다는 눈에 보이니 물 색깔과 파고의 높이 등을 대략 잴 수 
있지만 짙푸른 바닷속은 잘 보이지 않으니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또한, 바닷속의 조류 흐름이나 물 때깔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도 열어 볼 수 없으니 타인의 마음의
 깊이를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단지 그 사람의 말투나 표현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씀씀이로 그 사람의
마음의 풍성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풍성함도
늦가을에  떨어져 아무 데나 이리저리 구르는 낙엽처럼 덧없을 때도 있고 
조변석개처럼 시시각각 변하여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를 수 있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 오늘 표정과 내일 표정이 불으락 푸르락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처럼 몸과 마음이 변화
무쌍하고 변덕스러운 동물도 드물 것이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옷깃을 한 번 스치든 열 번 스치든 상대방에 대한
호불호도 시시각각 변하기 쉽다.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살아온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두껍고 복잡다단하다.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경우도 드물다.
어제 좋았다가 오늘 싫어지고 어제 칭찬하다 오늘 비난하기 십상이다.
모두 이기적이고자기 중심에서 타인을 바라보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설파했다. 눈뜨는 
순간부터 사람들과 부대낀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무수히 명멸하는 인간들과 대면하지 않고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흔히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만 변하는 게 아니다. 
사람도 알게 모르게 진화하는 듯하다. 얼굴 모습이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얼굴 모양이나 체격이 변하는 만큼 사람의 성격도 변한다. 
어떤 자는  어릴 적 모습이나 성격이 성인이 되고 너무도 달라 몰라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릴 적 형성된 성격이 성인이 되어도 쉽게 근본적
으로 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릴 때 형성된 인성과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성장해온 환경의 영향 등으로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주변의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 간혹 동기 모임에
나가보면 몰라보게 외양이나 어투가 달라져서 놀라게 되는 일도 있다.

대개 사회에 나와서 젊은 시절에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서로
왕래도 끊어지고 잊힌 친구를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기면서 
혹은 그리움이 뒤늦게 찾아와 보통 동창 모임에 얼굴을 한두 번씩
내밀기도 하고 친구를 찾는 경우도 많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모습에 새삼 무심한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만나지 못한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서로 학창시절의 그 추억에 사로잡혀 그때 그
마음으로 친구를 우연히 만나다 보면 다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과거의 친구를 과거 마음의 울타리에 스스로
갇힌채 현재 모습의 친구를 바라보면 때론 허전함이 스며들고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일도 있다.

꿈이 깨어진 것이다. 친구도 우선 외양을 보기 마련이다. 현재 위치나
환경 등을 묻고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달라진 말투나 모습을 보게 된다.

살아온 환경이 각박한 세태만큼이나 친구관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릴 적 굳은 맹세는 어디 가고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친구로 변하기도
하고 다른 지인과 별반 다를 것도 없이 한때의 만남으로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릴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진정한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려면 사회에 나와서도 서로 노력해야 한다. 친구라는 
좋은 가교 위에 마음을 더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사춘기 
때처럼 뒷집 미숙이에 대한 설렘을  풋사랑을 홀로 고이 간직하다 
길거리에서 아주 우연한 만남 등으로 사춘기때의 풋정이 깨어져 버리는 
아름다운 슬픔을 느낀다. 괜히 안 봤으면 모임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 반석처럼 든든하게 변치 말자던 굳게 서약한 소중한 우정과 
사랑은 차라리 추억으로 가슴에 묻고 가끔 추운 겨울에 곶감 빼먹듯이
아름다운 과거 여행 속으로 들어가 하나하나 들추어 보는 것이 낫지 
않았겠나 하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과 만나면서 우연한 만남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상대방이 먼저든 내가 먼저든 마음을 열고 마음을 나누고 
대화하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 아름다운 모습도 드물 것이다. 

여기 초면이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연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낚시도구를 주고 낚시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준 즐거운 취미를 갖게 
해준 부하 직원이다. 

이 친구는 처음 볼때 키는 장대처럼 크고 체격은 호리호리하고 불면 
날아갈듯한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마음은 부하답지 
않게 바다처럼 넓은 가슴을 지녔다는 느낌은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어쩌다 낚시를 이야기하다 그다음 날 바로 집에서 쓰던 비록 낡았고 
오래되었지만 쓰지 않는다면서 낚싯대를 아낌없이 내주었다. 외양은
호리병처럼 호리호리해도 수학 때 검도 등으로 단련된 외유내강형의 
재목이다.

불순한 무리를 보면 슬며시 다가가 뒤에서 검도로 단련된 체격으로 
상대를 제압할 부하다. 원래 어떤 취미도 처음 시도하는 데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비록 쓰던 낚싯대지만 아낌없이 주는 마음 씀씀이에 
잔잔한 감동이 몰려왔다. 오래 쓰던 것이라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도 않고 날고 헐어서 낚시하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나같이 
초보 낚시인에게는 그게 대수가 아니다. 

무엇을 나에게 주어서라기보다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온 나에게 좋은 취미를 안내해 줘서 고마운 것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와 낚시를 함께 간다거나 권유할 입장은 못된다. 처음 메신저
닉네임이 과수원집 아들이라 해서 있는 집안의 자녀로 생각하고 상상도 
해보고 물어보았더니 과거 진짜 과수원집 아들은 맞으나 어떤 드라마
속의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의 과수원은
아니었지만, 과수원집 아들이었음을 속일 수 없었던지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만큼은 과수원처럼 넓어 보였다. 과수원집 자녀의 마음 씀씀이를 
보고 문득 과수원집 주인이 뿌린 아들의 마음씨앗이 자라 얼마만큼 
넓은 마음을 지녔는지 상상을 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두 번째 소개하는 사람도 낚시와 관련이 되지만 같은 취미를 가져서
인지 몰라도 초면에 만난 그것도 바다 갯바위에서 우연히 만나 어떻게 
대화하다 바닷고기가 가교를 이어 준 듯 금방 친해져 처음 우연히 만난
날 그 낚시인이 잡은 벵에돔을 어찌나 많이 주든지 자신이 잡은 벵에돔의
절반을 검은 봉지에 싸서 주는 것이다. 마음이 참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낚시로 잡은 고기를 초면의 나에게 아낌없이 퍼다주는데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엉겁결에  뛰어가서 "아이고, 힘들게 잡은
고기를 이렇게 주시다니 염치불구하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벵에돔이 가득한 봉지를 받았다.

초면이지만 나는 그의 아낌없이 퍼주는 넉넉한 마음에 따가운 햇볕을 
가득 품은 것처럼 가슴이 녹다운 되는듯했다. 그분은 포항의 00신용금고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낚시를 좋아하다 보니 집에서 꽤 떨어진 이곳 영덕 창포
까지 낚시하러 온다고 하였다. 낚시경력이 오래된 자답게 씨알 굵은 
바닷고기를 가끔 건져 올리곤 했다. 초면의 그 인연으로 이제는 내가 미리
가끔 전화하고 주말에 갯바위에서 가끔 만난다. 낚시 하나만으로 만나지만
짧은 기간에 구면처럼 가까워졌다. 

요즘 인터넷의 보편화와 더불어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카페를 
개설하여 온라인으로 접촉하다 오프라인으로도 만나는 활성화 된 카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동호회는 친목도모, 취미관련 동호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유형별로 보면 동기회나 노래, 낚시 등을 취미로 하는 동호회가 
많다. 그런데 동기회의 경우 인연의 두께나 쌓아온 인정이 대체로 두터움에도
카페에 로그인하면 상대적이지만 뜻밖에 차갑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동기회 카페는 대부분 실명으로 익명성이 거의 없음에도 꼬리 글 달기나 
간단한 나도 한마디 올리는 경우도 대체로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같은
취미로 들락거리는 동호회는 익명성이 많은 글임에도 글 하나 등록하면 
꼬리글이나 한마디 글이 어떤 경우는 새끼꼬듯 주르륵 달려 올라온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대체로 동기회 카페보다 취미관련 동호회가 더 
활성화 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아이러니하게도 성격이 다른 두 동호회를
단순 비교하면서 더 끈끈하고 정이 가는듯한 동기회가 의외로 더 허전하고
공허함을 느끼는 것일까? 실명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같은 
취미로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하는 경우에 오프라인으로도 만나면 비록 
단기간이지만 때론 동기회보다 더 인간관계가 끈끈해지고 돈독해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그 이면에는 같은 취미에다 마음이 더 넉넉해
서인지 모른다. 마음의 넉넉함이란 금전적인 여유 등과는 관계가 없다.

대개 노래나 낚시 동호회 같은 경우 취미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 주는지 모르겠다. 속된말로 노래 좋아하고 또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더라도 노래 듣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별로 나쁜
사람이 없다 했지 않던가! 나 혼자 듣기보다 노래 좋아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등록하고 공개하기를 좋아하는 마음, 심지어 내가 부른 노래를 
올려 남이 평해주기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고 나 또한 남의 노래를 
듣노라면 잘하고 못하고 떠나 꼬리 글이나 나도 한마디를 후하게 올려
준다. 낚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취미로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려는 베풀려는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초면의 사람에게 마음을 나누기는 특히 어렵다. 마음의 문은
생각처럼 누구나 쉽게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초면이든 구면이든, 혹은 친구나 직장동료, 사회에서
만난 지인이든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한, 한때 그저 옷깃을
스친 수많은 사람중에 한 사람으로 지나칠 따름이다. 대다수는 그렇다. 
첫 옷깃에 한길 마음을 알 수 없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음을 베풀어 
본 적이 있는가 

마음의 문은 이것저것 자로 재지 말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표현
해보라. 표현하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는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등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하면 된다.

마음의 문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길거리에서, 계단에서 찌그러진
동전통을 놓아놓고 때가 낀 옷을 입고 구겨진 모자를 쓰고 애원하는
사람에게 가끔 금액의 소소함에 신경 쓰지 않고 혹은 인색하지 않고
동전을 놓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00원이면 어떻고, 200원이면 어떤가! 
아무 이해관계 없는 자에게 동정의 눈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연다고 생각해보라. 누가 보든 안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침마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요구르트 아줌마나, 우유 배달 아저씨에
게도 마음의 커튼을 활짝 열고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내가 
요구르트나 우유를 먹지 않아도 아침에 눈이 마주치거든 애써 외면하지
말고 먼저 다가서자 "반갑습니다"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상냥한 말
한마디에 아침이 더 밝아 질것이다. 처음 만나는 고객에게 커피 한잔
권유해 보자 마음의 창을 열고 먼저 나서보자 마음 씨앗은 자라서 
자신을 밝혀주고 주위를 환하게 비춰줄 것이다.

20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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