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각종 구기 종목의 학급 대항 경기가 해마다 열렸는데 교내 농구대회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학급마다 A,B팀이 출전하였고 우승팀에게는 우승컵이 수여되었다.
전교 문예부원과 교직원(1938년)
향토문학의 산실이라 할 계성학교는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일찌기 동요운동을 전개한 윤복진, 박을송과 더불어 우리나라 문단의 큰 기둥이라 할 김동리, 김성도, 김동사, 박목월 등이 계성학교에서 배출되었다.
동화사 원족
1925년부터는 봄에는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가을에는 원족이란 명목으로 금오산, 가야산 등을 3박 4일 쪼는 4박 5일로 다녀왔었다. 1929년에는 서울에서 대박람회가 열리어 단체 견학을 다녀왔다. 사진은 1939년 가을에 4학년생들이 동화산 원족 기념으로 찍은 것이다.
1930년대 후반의 일본 수학여행단
매년 4월 신학년을 맞이하여 제4학년은 3년간 적립해둔 여행기금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약 2주일 정도로 일본 각지를 여행하였는데 1934년에는 구주지방, 1937년에는 관서, 1938년에는 동경, 1939년에는 만주 하얼빈 지방, 1940,41년에는 동경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수학여행은 1942년부터 중단되었다.
전 조선 중등학교 유도대회 우승(1940.5.24)
연희전문 주최 전 조선중등학교 유도대회에서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1935년 아담스관 하층 남쪽교실에 돗자리40매을 깔고 유도를 시작한 것이 계성 유도의 효시이다. 사진 중앙의 인물이 유도 교사였던 최영호 선생이다. 이때에 이미 계성 마크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거선 교장을 보내면서(1941년)
일제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한반도에 거주하던 외국인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현거선교장도 피눈물을 머금고 계성을 떠나야만 되었다. 현거선 교장이 대구를 떠난 것은 1941년 5월 2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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