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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 여행
 

계성학교 교직원 전체 행사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해마다 여름방학의 시작과 더불어 2박3일~3박4일의 일정으로 실시되는 직원 여행이었다. 이 연수 여행은 계성학교의 교직원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전통적인 행사로 그 시작은 1948년 5월 31일의 합천 해인사여행이었다. 사진은 1956년 교직원 여행시 부여 백마강 유람 장면이다.


계성목장
 

기술교육 구현을 위한 각종 시설 중의 하나가 계성목장이었다. 미국 북장로회 산하 단체의 도움으로 젓소 6마리를 들여와 효목동의 임시축사로 이전한 것이 1956년 8월 29일이었다.
기술교육과 근로교육의 일환으로 전교생이 1년에 몇차례 목장에 나가 근로작업에 종사하였다.


계성 동산의 변모
 

1943년부터 일제는 방공호를 파서 미국의 공습에 대비토록하였다. 계성동산은 즐비하던 느티나무들이 벌목되고 대신 방공호로 가득 차게 되었다. 사진은 32회가 졸업식 후(1944. 4) 기념 촬영한 것이다. 사진을 통하여 헨더슨관에 각종 전쟁구호가 걸렸으며 유리창도 방공창으로 바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일제 말기의 군사훈련
 

일제 말기 계성학교는 대구에서 군사훈련을 가장 못하는 학교였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 모두가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였기에, 군사훈련을 다른 학교보다 늦게 시작하였고 또 철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6.25전쟁으로 징발당한 교사와 운동장
 

6.25전쟁으로 1950년 7월 12일부터 1955년 2월 28일까지 본교는 일부 또는 전부가 군부대에 징발당하였다. 서문교회, 안두화 선교사 사택, 서문교회 석유창고 등 임시교사에서 생활하다가 본교 서편 운동장에 천막교실, 가교실 등을 지어 수업을 계속하였다.


대학 입시자격 국가고시 도내1위, 전국 3위
 

전시하 학생들의 실력배양을 도모하고 입시의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국가고시제를 실시, 합격자에게 대학입학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기로 하고 1953년 12월 28일 처음으로 대학입시자격 국가고시를 실시하였다. 이 시험에서 계성고등학교는 도내에서 1위, 전국에서 3위를 차지하여 전국에 계성의 명성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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